원래 계획은 인천-뉴욕-시카고 도착 후 버스타고 위스콘신 매디슨으로 가는 거였다. 비행기표를 끊을 무렵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두바이나 파리같은 지구 반대편에서 환승하는 것보다는 미국 내에서 환승하는게 나을 줄 알았다. 가격도 괜찮은 티켓을 뜨자마자 바로 구매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델타항공 비행기를 대한항공에서 운항한다길래 더 좋았다.
하지만 여행에는 항상 변수가 생기는 법!
뉴욕 JFK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갑자기 We're sorry...라고 시작하는 문자메시지가 와있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열어보니 뉴욕에서 시카고 가는 비행기가 날씨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하더라. 대체 항공편을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 대체 항공편은 이제 내가 알아서 찾아야 했다. 짐을 찾고, 입국심사 줄을 기다리며 항공사 앱으로 폭풍검색을 하고, 그날 저녁 라과디아 공항에서 매디슨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찾긴 했지만... 미국 전산시스템을 믿지 못했던 나와 남자친구는 그냥 체크인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기로 계획을 변경한다.
한시간 가량 기다렸을까, 드디어 내 차례 입국심사가 다가온다. 직원이 신고할 물품 없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혹시 몰라 오징어 젓갈을 가지고 왔다고 먼저 이야기했다. 'marinated squid'를 가져왔다는 말에 직원은 그게 뭐냐 물어보고 구석으로 가서 짐 검사를 한번 더 받으라 한다. 직원들은 나의 한국 여권을 보고 익숙한 듯이 '라면 가져왔냐' 와 같은 질문을 몇개 물어보더니 그건 아니고 오징어 젓갈을 가져왔다고 설명하자 짐도 열어보지 않고 그냥 보내준다.
세관심사를 통과하고 나가자마자 있는 체크인 카운터에 물어보니, 그새 매디슨 가는 비행기 티켓은 한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확정 (confirmed) 티켓을 주고, 남자친구에게는 stand-by 티켓을 줄테니 비행기 이륙 시간이 가까워지면 다시 자기를 찾아오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대기순번 가장 위쪽에 있는지, 자리가 났는지 기다리는 거 말고 확인할 방도가 있는지, 자리가 안날 경우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바꿀 수 있는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는데 계속 내 말을 끊고 직원은 자기 할말만 한다. 일단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동해서 그쪽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결정.
택시타고 30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동해서 다시 델타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선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Sandra라는 직원이 우리를 응대해줬다. 역시나 매디슨 가는 비행기 자리는 한자리 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stand-by 티켓 받아서 도박수를 둘래? 근데 너 남편을 여기 버려두고 갈거야?'라고 물어보며, 아까 JFK 공항에서와는 다르게 이분은 시원시원하게 1안, 2안을 만들어줬다. stand-by 티켓 기다려서 당일 저녁 8시 비행기로 자리 나면 같이 가는게 1안. 자리가 안날 경우 그 다음날 저녁 8시 비행기로 같이 가는게 2안. 대신 그 다음날 비행기는 자신이 확정 해주겠다고 한다. 플랜 B까지 마련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공항도 활보하고, 게이트 앞에서 잠도 자다가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그런데 탑승 시간이 다가오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조금씩 늦춰진다. 2-3번 반복되다 보니 느낌이 쎄하다. 중앙 전광판을 보니 다른 항공편들도 몇개씩 취소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타야할 항공편도 빨간 글씨로 'CANCELLED'라고 뜬다. 게이트 옆에 델타항공 help desk가 있었는데, 다른 항공편들도 줄줄이 취소되다 보니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두번 결항됐는데 보상이라도 받자는 심정으로 1시간 넘게 줄을 서있었지만 날씨때문에 취소된 항공편은 보상이 안되고, 자기들 고객센터 번호를 줄테니 이 번호로 전화하면 뭔가 응대해줄수도 있다는 말 뿐이다. 고객센터는 전화연결이 (당연히) 안되고, 문자 상담에서도 보상이 어렵다는 말 뿐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날씨로 인한 결항은 항공사에서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자 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든 보험은 그마저도 커버해주지 않는 보험이었다...ㅎ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날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은 확정된 상태였지만, 다음날 저녁까지 공항에 있을 수는 없었다. 공항과 적당히 가까운 호텔을 알아보는데, 바퀴벌레 나오는 모텔이 세금 불포함 $150... 눈물을 머금고 Long Island에 있는 $230정도인 호텔과 타협했지만 세금 등등을 붙이니 $300에 육박했다... 그래도 드디어 샤워도 하고, 깨끗한 곳에서 침대에 머리를 붙이고 잘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잠에 들었다...
선잠을 자고 비행기 시간인 저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당일치기 여행이라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사람이 많으니 활기차기도 했지만 우리의 상황과 성향에는 너무 정신없고 시끄럽다고 느껴졌다. 타임 스퀘어를 지나가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친구가 소매치기 당할 뻔한 사건으로(ㅠㅠ) 돌아다닐 의욕을 상실해버렸다. 이번 비행기는 제발 결항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고,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했다. 밤늦게였지만 매디슨에는 예상 도착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하룻밤 호텔에서 묵은 뒤, 다음날 아침 드디어 내가 매디슨에서 살게될 진짜 집으로 도착했다.
8월 7일 오전 10시 비행기로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63시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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